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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따라 집어본 폴란드 보드카, 소플리카 헤이즐넛

공사판김씨 2026. 10. 15. 11:02

 

폴란드 마트에서 장을 보다 보면 현지 사람들이 뭘 사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그 나라 사람들이 실제로 집어 가는 물건이야말로 진짜 현지 물건일 테니까.

마크로에서 보드카 코너를 지나다가 그런 장면을 봤다. 사람들이 소플리카(Soplica)라는 브랜드의 병을 집어 가고 있었다. 종류도 아주 많았다. 라즈베리, 체리, 레몬, 커피, 초콜릿까지 온갖 맛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그중 헤이즐넛(Orzech Laskowy)을 골랐다. 다만 큰 병은 아니었다. 맛만 보려는 목적이었으니 100밀리리터짜리 미니 보틀로 집었다.

이 브랜드의 내력은 만만치 않다. 라벨에 A.D. 1891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 소플리카는 폴란드에서 산업적으로 생산된 가장 오래된 보드카 브랜드 중 하나다. 창업자 볼레스와프 카스프로비치가 1888년 그니에즈노에 공장을 세웠고, 1891년에 첫 병을 내놓았다. 1913년까지 국내외에서 73개의 상을 받을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고 한다.

창업자의 삶도 평범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1919년에는 그니에즈노 시장을 지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바르샤바로 추방됐고, 1943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름에도 사연이 있다. 소플리차는 폴란드 국민 서사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판 타데우시』에 나오는 가문의 이름이다. 라벨에 그려진 장원 저택도 그 작품을 가리킨다. 우리로 치면 고전 소설 속 이름을 붙인 술인 셈이다.

이런 과일이나 견과 향이 들어간 술을 폴란드에서는 날레프카(nalewka)라고 부른다. 재료를 술에 담가 우려내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내 병에 적힌 도수는 30도였다.

그날 숙소에서 동료들과 한 잔씩 맛을 봤다.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오묘하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는 맛이었다. 헤이즐넛이라는 이름대로 견과류의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그게 고소하다기보다 느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위로 매운맛이 올라왔다. 결국 입에 남은 건 견과 향보다 그 자극이었다.

공짜로 주면 모를까, 내 돈 주고 다시 사지는 않을 맛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후로 검증됐다. 폴란드에 머무는 동안 소플리카 진열대를 수없이 지나쳤지만, 그 뒤로 이 술을 다시 집은 기억이 없다. 안 맞는 술은 몸이 먼저 아는 모양이다.

100밀리리터짜리를 고른 건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궁금증은 풀었고, 손해는 미미했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술을 시도할 때 작은 병부터 집는 건 꽤 합리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