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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의 술과 양탕, 단펑 고량주

공사판김씨 2026. 10. 14. 08:32

 

샤먼 출장 중에 마신 술이 하나 더 있다. 우량예를 함께 마셨던 동료들과 간 자리에서였다.

병은 투명한 유리에 금색 글씨가 박힌 단정한 모양이었다. 목 부분과 몸통에 모두 丹凤佳酿(단펑가양)이라고 적혀 있었다. 단펑은 붉은 봉황이라는 뜻이고, 가양은 좋은 술이라는 뜻이다.

찾아보니 단펑은 샤먼을 대표하는 백주 브랜드였다. 이곳에서 만드는 샤먼 고량주(厦门高粱酒)가 대표 제품인데, 현지에서 나는 붉은 수수와 자체적으로 띄운 누룩, 좋은 물로 빚는다고 한다.

원료 구성이 눈에 띄었다. 수수를 중심으로 보리와 밀, 그리고 완두콩이 들어간다. 앞서 적었던 서봉주가 완두콩을 누룩 원료로 써서 봉향이라는 독자적인 향형을 만들어낸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완두콩이 등장한다. 전통적인 고체 발효 방식을 쓰고, 지하 저장고에서 여러 해 묵힌다고 한다. 브랜드 라인업은 56도짜리 고량주부터 42도, 30도까지 폭이 넓은데, 내가 마신 병이 그중 어느 것이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맛은 피니시에서 기억에 남았다. 쿰쿰한 향이 올라왔다. 장향인지 농향인지 정확히 구분할 자신은 없지만, 중국 백주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아는 그 발효된 냄새가 끝에 분명히 남았다. 한국 소주에는 없는 결이다.

 



그런데 그날 나를 사로잡은 건 술이 아니었다. 안주로 나온 양탕이었다.

그 집은 양고기 전문점이었다. 양갈비도 나오고 양꼬치도 나왔는데, 이쪽은 한국에서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갈비나 꼬치는 어디서 먹어도 맛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문제는 양탕이었다. 우리나라 곰탕처럼 뽀얀 국물이었다. 양으로 끓인 탕은 잘못 다루면 특유의 냄새가 올라와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조리를 제대로 해야 비로소 먹을 만해지는 음식이다.

그런데 그 집 양탕은 달랐다. 냄새가 거슬리지 않았다. 내 비위가 특별히 좋은 편도 아닌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게다가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술기운이 바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숙취가 그 자리에서 풀리는 기분이랄까.

술자리에서 최고의 안주는 술맛을 받쳐주는 음식이라고들 하는데, 그날의 양탕은 한 단계 더 나갔다. 술을 받쳐주는 걸 넘어 몸을 추슬러 주는 안주였다.

중국 출장을 다니며 마신 백주들은 저마다 특색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샤먼의 기억을 떠올리면 단펑의 쿰쿰한 피니시보다 뽀얀 양탕 한 그릇이 먼저 생각난다. 샤먼에 다시 갈 일이 있다면 그 집부터 찾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