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리뷰

에어링을 기다리다 2026년이 되어버렸다, 벤로막 2014 캐스크 스트렝스

공사판김씨 2026. 10. 29. 13:30

쉐리와 피트를 한 잔에서 같이 느끼는 게 좋다.

달큰한 과실 뒤로 연기가 깔리는 그 구성이 내 입에 맞는다는 걸 몇 병 거치면서 알게 됐다. 그래서 그 조합으로 평이 좋은 병을 찾다가 이걸 알게 됐다.

위스키 하우스에서 샀다. 2024년인지 2025년인지 헷갈리는데 그 무렵이다. 정부 지원금이 나왔을 때라 그걸로 결제했다. 가격은 15만원이 안 됐던 걸로 기억한다. 60도가 넘는 캐스크 스트렝스를 이 값에 집을 수 있으면 괜찮은 쪽이다.

집에서 와이프랑 땄다. 맛만 보려고 그날 바로 열었다.

뚜껑을 따자마자 잔에 따랐는데 향이 확 올라오지 않았다. 맛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안쪽에 눌려 있는 느낌이었다.

60도가 넘는 술에서는 흔한 일이다. 알코올이 향을 덮고 있어서 열어둔 직후에는 잘 안 나온다. 시간을 주거나 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알고는 있었다. 에어링을 좀 시켜놓고 다시 맛봤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다른 위스키들 맛보느라 뒤로 밀렸고, 그러다 보니 2026년이 되어버렸다. 병은 여전히 집에 있다. 제대로 본 적은 아직 없는 셈이다.

60.6도치고 타격감이 높지 않았다.

보통 이 도수면 목으로 넘길 때 확 치고 들어오는 게 있는데 그게 덜했다. 부드럽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46도에서 57도 사이를 좋아하는데, 그보다 높은 숫자를 보고 긴장했던 것에 비하면 순했다.

벤로막증류소는 스페이사이드에 있으면서 피트를 계속 쓰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아일라처럼 세게 때지 않는다. 쉐리 단맛을 덮지 않고 뒤에 깔릴 정도로만 넣는다. 내가 찾던 조합이 여기서 나온다.

내력이 좀 특이하다. 1898년에 문을 열었는데 1983년에 가동을 멈췄다. 그대로 10년을 방치돼 있다가 1993년에 엘긴의 독립병입자 고든앤맥페일이 사들였다. 다시 문을 연 건 1998년이고, 그 자리에서 첫 캐스크를 채운 사람이 당시 찰스 왕세자, 지금의 찰스 3세다.

내가 가진 병은 2014년에 증류해서 2024년에 병입한 배치 3번이다. 퍼스트 필 버번과 퍼스트 필 쉐리 캐스크만 썼다. 증류소 노트에는 노즈에 바닐라와 프룻케이크, 흑설탕, 생강이 있고, 팔레트는 크리미하면서 자두 조림과 세비야 오렌지, 굵게 간 후추가 나오며, 피니쉬에 연기와 아니스가 길게 남는다고 적혀 있다.

라벨에 적힌 문구도 비슷하다. 프룻케이크 향에 자두 조림과 마멀레이드, 후추의 매콤함, 그리고 연기와 아니스로 끝난다고.

이 글을 쓰면서 병을 다시 꺼냈다. 2년 가까이 묵혔으니 공기와 만난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따놓고 한참 둔 병은 힘이 빠지기도 한다. 발베니 싱글 배럴이 그랬다. 이건 어떨지 모르겠다. 눌려 있던 향이 풀려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가라앉아 있을 수도 있다.

조만간 제대로 앉아서 노즈부터 피니쉬까지 다시 느껴봐야겠다.